2020. 9. 4. 00:56ㆍ각종 후기, 리뷰들/책 리뷰
올해들어 MBTI 성격검사가 10~20대 사이에서 유행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몇 달 전에 서점에서 '성격의 탄생'이라는 책을 발견했는데, 성격검사 좋아하시는 분들께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채워줄 수 있는 책이지 않나 싶습니다.
'성격의 탄생'은 심리학계에서 과학적, 통계적으로 유의성이 입증된 성격요인이론인 'BIG 5'(또는 5대 성격요인) 지표를 기준으로 다섯가지 기준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어떻게 차이가 날 수 있는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양한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진화론과 뇌과학을 접목하여 설명하고 있어서, BIG5 성격이론이 단순히 그럴듯한 말 끼워맞히기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원래 2009년에 초판이 나온 꽤 오래된 책임에도 꾸준히 팔려서인지 작년 말에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MBTI로 다시한 번 성격 테스트 유행이 불고 있는데, '성격의 탄생'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개정판 발간 타이밍이 적절한 듯 합니다.
간이 성격검사
'성격의 탄생'의 흥미로운 점은 책 초반부에 BIG5 기반의 간이 성격테스트가 제공되어 있는 점입니다. 12문항으로 굉장히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이 문항 만으로 사람 성격의 전반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합니다. 뉴캐슬 대학교에서 2007년에 개발한 평가지라고 하는데 영국인 성인남녀를 500여명의 설문결과를 분석하여 설계한 것이라 문화가 다른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잘 들어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과학적 근거는 갖춘 평가지라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
저도 테스트를 해봤는데 질문지도 심플하고 계산방법도 심플해서, 나온 결과가 제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라서(MBTI와도 좀 차이가 있었구요) 개인적으로는 이게 결과가 맞나 싶긴하네요ㅋㅋ
하지만 BIG5 지표는 MBTI처럼 16가지로 딱 구분지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성격유형이 아니라, 연속된 수치이기 때문에 단순히 '외향성', '성실성' 같은 성격을 설명하는 단어에 너무 집착하는 건 좋지않고, 그 이후에 각 지표별로 어떤 성격적 특성을 지니는지 해설을 보면서 이해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BIG 5 성격요인
이 책을 보거나 또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BIG 5 성격지표는 인간은 다섯가지의 성격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수치화하는 키와 몸무게같은 것들이 있듯이 BIG 5 성격지표도 개인의 성격 특성을 설명하는 수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BIG 5는 통계학에서 사용되는 요인 분석(Factor Analysis)에 근간하여 다섯가지 성격 특성을 뽑아낸 것인데, 요인 분석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격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설문조사지 결과를 수집하고, 문항간에 응답이 어느정도 비슷한 경향을 나타내는 지 그리고 그룹을 어떻게 묶었을 때 성격을 가장 잘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수학적 계산을 통해 도출하는 것이라고 대략적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 예시로 '사교 활동', '여행', '경쟁심', '섹스에 대한 관심', '우울증', '신경쇠약' 여섯가지 설문결과가 어떤 요인과 크게 관련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의 네 가지와 뒤의 두 가지는 서로 비슷한 응답 경향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어떠한 지표로 간략화 할 수 있는데, 앞의 네 가지와 같은 기질은 '외향성'으로 부르기로 하고, 뒤의 두 가지와 같은 기질은 '신경성'으로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요인 분석의 특성상, 지표 설정 및 해석은 연구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BIG 5가 아니라 더 간략화해서 성격을 3개의 요인(외향성, 신경성, 정신병적 경향성)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연구자도 있었고, 반대로 요인을 더 추가해서 16가지 특성으로 구분하고자 한 연구자도 있다고 합니다. 요인개수를 많이 설정할수록 성격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있으나 각 요인 간의 차이를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요인개수를 적게 설정할수록 각 요인의 특성에 대한 의미를 잘 설명할 수 있으나 개수가 너무 적어서 성격을 제대로 묘사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되도록 적은 요인 개수로 최대의 설명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요인 분석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BIG 5가 현재까지는 가장 효과적인 모형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 BIG 5 성격요인 -
1. 외향성(Extraversion)
2. 신경성(Neuroticism)
3. 성실성(Conscientiousness)
4. 친화성(Agreeableness)
5.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BIG 5 성격요인은 위의 다섯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성격의 탄생' 책에서는 각 챕터별로 각 성격요인이 높낮이에 따라 어떠한 성격 특성을 보여주는지 실제 인물과 인터뷰를 통한 사례로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 민감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그만큼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향이 있는 반면, 외향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 민감해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 굳이 나서서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른바 내향적인 사람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 민감한 특성은 똑같은 자극에도 도파민이 자주, 크게 활성화되는 뇌과학적인 특징이 발견되고 있음을 통해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외향적인 특성은 자손번식에도 유리하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지만, 인류가 외향적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골고루 존재하는 이유는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안전이나 가정생활의 불안정한 상황에 빠질 확률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자손번식과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BIG 5 성격요인으로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이코패스는 공감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는 '친화성'이 낮아야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성실성'도 낮아서 반사회적인 마인드도 가져야 하며, '신경성' 또한 낮아서 나쁜 행동을 했을 때 가져오는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운 마음 또한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성격 특징은 BIG 5 성격요인 한 가지 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의 조합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다섯 가지 요인만으로도 다양한 성격을 해석할 수 있는 유용성을 갖고 있습니다.
환경과 성격형성의 인과관계?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자녀들이 가정환경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는 형제, 자매간 태어난 순서에 따라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고 하죠. 이 책의 저자는 대개 사람의 성격에 가정환경이나 태어난 순서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정도는 매우 미미하다고 하는 꽤 상식 밖의 연구결과를 소개합니다. 정확히는 아직까지 환경이나 후천적인 요소가 성격요인에 영향을 준다는 유의미한 결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입증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사례로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양육된 케이스를 사례로 소개하는 데 의외로 가정환경이 달라져도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당히 상식을 깨는 이야기인데, 가끔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게 잘못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한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이러한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외적으로 키나 외모와 같은 외양적인 요소는 성격요인이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즉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일수록 주변의 호감을 사기 쉽기 때문에 외향성 요인에서 플러스 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키, 외모 또한 결국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크기 때문에 완전히 환경적인 요소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역시 모든 건 유전자빨인 듯.)
BIG5 vs MBTI
요즘 MBTI 유행을 타고 유튜브에서도 MBTI로 검색하면 성격유형 해설이나 설명하는 많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16Personalities라는 설명이 잘되어 있는 무료 테스트 덕분이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MBTI가 대중들 사이에서는 인지도도 높고 인기도 높지만 심리학계에서는 학술적으로 검증된 성격측정 방법은 아니라고 합니다. 반대로 BIG5는 학술적으로는 크게 인정받고 있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많이 낮습니다.
이는 BIG5와 MBTI는 성격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라는 점에서 비슷한 듯 하지만 두 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BIG5는 연속적인 수치로 측정되는 서로 독립된 성격요인인 반면, MBTI는 서로 대립되는 문자로 표현되며 서로 어느정도 영향관계를 갖는 성격유형입니다.
예를들어 사이코패스는 BIG5 요인에서 친화성과 성실성, 신경성이 모두 낮을 경우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위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이것을 곧바로 '사이코패스 유형'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키와 몸무게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수치를 가지고 해석하지 무 자르듯이 나눠서 몇 이상은 키다리, 몇 이하는 난쟁이, 키랑 몸무게가 몇 이상이면 '비만 유형'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죠. (BMI지수가 몇 이상이면 과체중, 더 높으면 비만 이런 명칭은 있지만 이것은 기준이지 유형을 가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용도가 다르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반면 MBTI는 어느 기질이 좀 더 많이 강하냐 약간 강하냐 정도를 측정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격을 16가지의 불연속적인 유형으로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은 16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MBTI만의 4가지 기준을 갖고 각 개인이 16가지 성격의 프로토타입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구분하여 어떤 유형은 성격이 어떤지 설명하기 때문에 대중입장에서는 좀 더 직관적으로 어떤 성격유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MBTI가 심리학계에서 학술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4가지 구분 요인인 '외향성↔내향성', '감각↔직관', '사고↔감정', '판단↔인식'이 어떤 학술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정의된 지표가 아니라, MBTI의 창시자인 캐서린 쿡 브릭스와 이저벨 브릭스 마이어가 현재는 심리학계에서 과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제한적으로만 인용되는 카를 융(Karl Jung)*의 이론에 근거하여 설정한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을 둔 심리학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지, 철학 등 정성적인 통찰이 필요한 부분에서까지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학술적인 차원을 떠나서 개인의 재미차원에서든 학교나 회사에서 인성검사의 일종으로 많이 테스트를 하는 것을 보면 경험적으로 MBTI가 사람의 성격을 측정하는 유용성은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MBTI는 사람의 성격을 이해하는 통찰을 제공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으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한계점이 있기 때문에 MBTI 유형만으로는 사람의 성격을 완벽히 표현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겠습니다.
따라서 MBTI를 넘어서 심리학에서 활용하는 성격이론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께 '성격의 탄생'은 본격적으로 교양수준의 지식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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