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도 이해하는 현대 클래식 음악의 흐름 - (1) 드뷔시와 인상주의

2022. 1. 9. 17:57정보글 모음/음악,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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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면서, 그 전에는 전혀 몰랐던 근현대 클래식 음악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대미술도 그렇지만 클래식 분야에서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일반인 레벨에서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같은 전위예술이라든지, 쇤베르크의 무조음악같이 멜로디 라인이 거의 들리지 않는 듣기 난해한 이미지로 가득한데요.

 

클래식 음악은 대략 바흐 때 부터 시작한다고 쳤을 때 300년 이상의 역사동안 단절됨 없이 체계적인 이론과 곡들이 연속적으로 쌓여온 역사가 깊은 장르라 요즘에도 수많은 음악 전공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활발히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클래식 음악은 논문 뿐만 아니라 시중에도 일반인 레벨에서도 이해할만한 개론서들이 종종 나오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피아노 음악은 클래식 음악의 변천사를 가장 핵심적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관련 문헌들이 꽤 있는 편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클래식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바흐 시대 바로크 음악,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시대, 쇼팽, 리스트, 브람스 등의 낭만시대의 아름다운 음악이 어떤 연유로 이렇게 난해한 음악으로 흐르게 되었는지, 아니면 우리가 현대 클래식 음악에 대해 가지는 오해가 있는 지 클래식 음악을 취미로 배우고 있는 일반인 입장에서 이해해해보면서, 현대 클래식 음악의 흐름과 특징을 피아노 음악을 기준으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3개의 글은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1) '드뷔시와 인상주의'는 낭만주의가 한창 무르익은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고 새로운 음악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여 이후 현대 클래식 음악이 단일한 사조가 지배하지 않고 전방위적 방향으로 발산하는 단초를 제공한 음악가로 볼 수 있는 드뷔시와 인상주의를 다룹니다.  

 

2) '음렬주의, 끊임없이 확장되는 음악의 자유도'는 인상주의 이후 실험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흔히 듣기 난해하다고 불리는 현대 클래식 음악의 대표주자인 음렬주의 등의 음악사조와 현대 클래식 음악이 어디까지 갈데까지 가는지 알아봅니다.  

 

3) '에릭 사티와 프랑스 6인조, 미니멀리즘과 신고전주의'는 에릭 사티와 난해한 현대 클래식에 반기를 들고 좀 더 형식성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와 타 장르와 퓨전을 통해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으로 불릴 수 있는 프랑스 6인조의 곡들을 소개합니다.

 

 

 

1. 드뷔시와 인상주의 음악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1862~1918)는 현대 클래식 음악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인물일 것 같은데요. 다른 곡들도 유명한 곡들이 많지만 특히 달빛(Clair de Lune)은 요즘에도 방송이나 영화, 게임 등 미디어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고(최근에는 싸펑2077에서도 들을 수 있었군요), 피아노 입문자들이 초보단계를 막 벗어났을 때 많이 도전하는 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드뷔시의 1타 히트곡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드뷔시의 달빛이 왜 인기가 많을까 생각해보면, 일단 멜로디가 아름다운 것도 그렇지만, 시종일관 여리고 부드럽게 치고 페달을 많이 사용해 울림이 풍부한 음색을 갖고 있어서 고요하거나 낭만적인 분위기를 주고 싶을 때 여기저기 다 잘 어울리는 편이고, 또 그 이전 시대의 다른 클래식 음악에 비해 덜 형식적이여서 무겁지 않은 느낌이 또 요즘 취향에 잘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 등에서는 드뷔시는 인상주의 음악가이고 그의 대표곡으로 피아노 곡은 달빛이 보통 소개되서, 인상주의 음악은 '달빛'같이 클래식 치고 좀 말랑말랑하고,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인상주의 미술이 그렇듯 사물이나 대상에서 받는 순간 순간의 인상, 느낌을 음악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구나 생각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달빛이 작곡된 해는 1890년으로 드뷔시 나이가 28세, 그의 피아노 인생의 전반부로 아직 드뷔시 특유의 인상주의 스타일이 완전히 무르익기 전, 이전 시대인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드뷔시의 달빛은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곡이지만, 인상주의의 특징을 이해하기에는 다른 곡들을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드뷔시가 낭만주의에 반기를 든 이유와 당시 유럽 사회


<1889년 파리 국제 박람회, 출처 : wikipedia.org>

 

드뷔시가 살았던 시대는 19세기 중후반~20세기 초반으로 유럽의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대에는  1851년 영국의 수정궁에서 세계 최초의 박람회인 런던 엑스포를 시작으로 수많은 식민지를 가진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의 문물이 유럽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인상주의 화가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일본 판화 '우키요에'도 이 시기에 소개되기도 했구요. 그만큼 이제 유럽은 고위층 뿐만이 아니라 대중 레벨에서도 국제문화가 깊숙히 침투하는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사회로 변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19세기 중후반은 음악계에서는 '국민악파'가 떠오른 시기이기도 한데, 그 전까지 서양 음악의 확고부동한 중심지인 독일-오스트리아 일변도의 음악을 그대로 추종하기보다, 음악가 자신의 국가나 민족의 전통문화를 접목하여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독자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주로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러시아, 미국이나 유럽 주류 문화의 주변부에 해당되는 노르웨이, 핀란드, 스페인 등 국가에서 주로 발생하였습니다.

 

드뷔시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에 두각을 나타나는 사람이였는데, 열 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할 정도로 능력이 있었지만 학생 시절에도 좀 반항적이고 전통적 규칙을 무시하고 음악을 만드는 기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23살이였던 1884년에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있는 음악상이였던 '로마상'을 대상을 수상하였는데. 이후 1890년까지 드뷔시의 20대는 유럽 이곳 저곳을 다니며 여러 지역과 문화를 접하면서 그의 음악세계가 형성된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상 수상 이후 2년간 로마로 유학을 갔고, 1888년~1889년에는 후기 낭만주의의 거장 바그너(Wagner) 음악에 관심을 갖고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로 여행을 하기도 했는데, 로마 유학도 그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독일을 다녀온 이후 오히려 바그너 음악의 안티가 되었는데, 1903년에 '바그너의 음악은 새벽으로 오해받는 황혼이다.' 라고 깔 정도였다고 하네요.

 

즉, 정리하면 19세기 말 무렵으로 들어서면서 100년 가까이 서양 음악을 지배하던 낭만주의 음악은 두 가지 서로 상이한 요인으로 인해 큰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제국주의 체제 및 교통의 발달로 런던, 파리 등을 중심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통문화가 유럽에 소개되어 음악가들에게 기존 서양 음악의 문법과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제공됨

 

2. 낭만주의 음악이 서양 음악을 지배한 지 오래된 상태에서 국민악파가 등장하는 등 기성 서양 음악의 메이저를 차지하는 독일-오스트리아 스타일의 낭만주의 음악과 차별화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아짐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드뷔시는 지금까지 대세였던 독일 중심의 낭만주의 음악에서 벗어나서 내 방식대로 음악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진 것으로 보이고, 이 때부터 드뷔시 특유의 인상주의 음악을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이런 흐름으로 보자면 독일 스타일을 추종하지 않고 독자성을 나타내겠다는 측면에서 국민악파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비슷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드뷔시가 국민악파로 불리지 않고 인상주의라는 별개의 사조로 불리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당시 프랑스 파리는 국제도시로 예술, 철학 분야에서도 수많은 외국출신 유명인들이 파리를 근거로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교류되어 전통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진보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는 곳이였기 때문에, 드뷔시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 프랑스 문화 전통을 혼합하기보다는, 스페인, 동양음악 등 이국적인 스타일을 접목하는 등 국제적인 스타일을 시도하였으며 국민악파처럼 낭만주의 음악을 수용하면서 발전시키기 보다는 기존의 전통을 과감히 깨는 방식의 작법을 구사하면서 동시대 음악가와는 명확히 다른 노선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드뷔시와 인상주의 음악의 주요 특징


 

그러면 드뷔시로 비롯되는 인상주의 음악의 주요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인 계열의 미국 음악 유튜버인 'Nahre Sol'이 드뷔시 음악의 특징을 예시를 들면서 설명하는 영상이 있는데, 이 영상 하나만으로 왠만한 특징은 다 설명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간단한 멜로디의 노래인 생일축하 노래(Happy birthday to you)를 드뷔시 스타일로 어레인지해서 드뷔시의 스타일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1. 비기능 화성의 사용과 화성의 확장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에서는 화성(Harmony)은 각 패턴에 따라 갖는 어떤 전형적인 역할 또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불안정한 코드의 화성을 사용하면 그 다음에는 안정감이 있는 화성을 사용해야 한다든지, 증4도(Tritone)와 같은 특정 화음은 듣기 안좋다는 이유로 '악마의 화음'이라고 불린다든지, 5도(도-솔), 8도(도-도)와 같은 완전음정의 병진행은 텅 비어보인다는 이유로 금기시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뷔시는 화성을 화음 자체가 주는 소리와 분위기에 주안점을 두고 곡 내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는 구속에서 벗어나는 작법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화성의 역할을 구속하는 기능 화성의 개념을 완화하고, 기존에 금기시 했던 화음을 도입하는 등의 화성의 자유도 확장은 클래식 음악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현대에 발생한 재즈 피아노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드뷔시의 음악의 어떤 부분들은 클래식이라기보다 재즈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2. 음계의 확장 및 재발굴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현대 대중음악에서 가장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음계는 장음계와 단음계인데 이것은 바흐 시절부터 확립되어 300년 넘게 이어져오는 전통입니다.

 

하지만 바흐 이전시대인 중세, 르네상스 시기까지는 장음계, 단음계 체계가 아니라 선법(Mode)라고 하는 약간 다른 음계를 사용했었습니다. 선법은 이오니안(Ionian),  도리안(Dorian), 프리지안(Phrygian), 리디안(Lydian), 믹소리디안(Mixolydian), 에올리안(Aeolian), 로크리안(Locrian) 총 7개가 있는데, 바로크 시대를 지나면서 장음계와 동일한 이오니안(Ionian), 그리고 자연 단음계와 동일한 에올리안(Aeolian)으로 통폐합되는 바람에, 도리안, 프리지안 등 다른 음계를 사용한 음악은 명맥이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드뷔시는 100년 넘게 사용되지 않던 선법을 재발굴하여 사용함으로써 기존 장/단음계와는 다른 느낌의 음악을 선보였고, 이 선법은 대중음악이나 재즈 등에서 종종 사용되어 음악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드뷔시 음악임을 알 수 있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온음음계(whole tone scale)의 사용이 있는데, 온음음계는 한 옥타브 사이에 모든 음이 온음 간격으로 배열된 음계입니다. 이 음계는 다른 이전의 음악가들도 부분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드뷔시처럼 적극적으로 온음음계 티를 내면서 사용된 경우가 잘 없었기 때문에, 드뷔시 음악의 특징 중 하나로 주로 거론됩니다.

 

 

3. 여백이 있고 공간감 있는 분위기

 

19세기 초중반 쇼팽과 리스트 등 비르투오소(Virtuoso) 스타일의 피아니즘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화려하고 멜로디와 화음들로 꽉꽉 채워진 밀도 높은 음악이 당시까지 서양 음악의 주류였던 반면에, 드뷔시의 음악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넓고, 페달을 풍부하게 사용해서 여러 소리들이 겹쳐져서 울리는 효과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잔잔하고 몽환적이고 느긋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인상주의 미술도 그 이전 시대의 미술작품과 다르게 희뿌옇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인데, 인상주의 미술과 인상주의 음악은 서로 다른 예술 장르임에도 '인상주의'라는 같은 단어로 설명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백의 미' 특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하프 스타일로 쏟아지는 아르페지오와 베이스 라인

 

드뷔시 곡에서 특정 음역대를 동일한 패턴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아르페지오(펼침화음) 패턴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주 멜로디 역할을 하기 보다는 잔잔하게 연주하여 물의 흐름, 빛의 반사와 같은 자연현상이라든가 특정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깔아놓는 기능을 합니다.

오른손으로 배경 사운드를 연주하는 동안 왼손으로 베이스 또는 주 선율을 페달을 사용하여 연주하여 차분하고 울림이 풍부한 분위기를 들려줍니다.

 

 

드뷔시의 위대한 점


<그림 출처 : https://www.classical-music.com/composers/50-greatest-composers-all-time>

 

영국 BBC Music Magazine에서 2020년에 174명의 클래식 작곡가를 대상으로 위대한 작곡가 50인을 꼽았는데, 그 중에 드뷔시가 5위로 높은 순위를 차지했습니다. 1위가 바흐, 2위가 스트라빈스키, 3위가 베토벤, 4위가 모차르트로 1위, 3위, 4위는 누구나 아는 클래식 음악가, 2위는 현대음악의 백과사전처럼 오랜시간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끼쳤던 음악가인 것을 감안하면 드뷔시가 바로 그 다음의 위치를 차지할 만큼 중요도라든가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드뷔시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때는 그 정도의 음악가인가 라는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나니 그의 위치가 더 윗 순위의 음악가에 못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https://www.classical-music.com/composers/50-greatest-composers-all-time/

 

The 50 Greatest Composers of All Time

We asked 174 composers to choose the 50 greatest composers of all time

www.classical-music.com

 

 

드뷔시 음악은 고전주의, 낭만주의까지 이어진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작곡할 때 지켜야 할 수많은 규칙들을 상당 부분 허물고도 참신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렸다는 점에서 클래식 음악에서 일종의 혁명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를 기점으로 인상주의와 그 이후의 음악사조들을 현대음악의 범주에 포함하여 바로크-고전주의-낭만주의로 이어지는 근대음악와 확연히 다른 세대 구분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뷔시 사후 100년이 지난 요즘 사람들 입장에서 드뷔시의 음악은 그냥 스타일이 좀 다른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이지 혁명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볍게 들어서는 잘 느끼기 힘듭니다. 드뷔시는 기존의 전통을 깨고자 했던 의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여전히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듣기에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것은 기성 음악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드뷔시 특유의 불협화음 사용이나 모호한 느낌이 많이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음악에서 나타나는 완전협화를 배제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즉 드뷔시가 변화를 꾀한 변화는 그저 기존 음악에 대한 비판을 위한 비판,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 역할이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냥 실험적인 음악보다는 신선하면서도 직관적으로도 듣기 좋은 곡을 만드는 게 음악가 입장에서는 훨씬 더 어렵다고 하죠. 보통 새로운 스타일을 처음 시도하는 음악가는 변화 그 자체에 집중하느라 실험적이게만 들리고 완성되지 못한 느낌을 주기 쉬운데, 드뷔시는 현대음악의 서막을 연 사람 치고는 곡 자체가 듣기 좋고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게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에서 드뷔시가 왜 기존 음악 스타일에서 벗어나고자 했는지는 시대적 환경이 압력으로 작용했음을 언급했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꼭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낭만주의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음악을 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만약 그 사람이 완전히 난해한 스타일로 중무장한 음악가였다면 그는 혁신적인 음악가였다고 평가를 받았을 수는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위대한 음악가에 이르지는 못하였겠지요.

 

드뷔시가 1860년대 생으로 약 10년 정도 앞서 1870~1880년대 태어난 많은 현대 음악가들보다 앞서 활동하면서 음악가들이 쓸 수 있는 화음이나 형식, 레퍼토리의 자유도를 대폭 확장시켜 놓은 덕분에, 후배 세대 음악가들은 '이제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작곡해도 되겠구나.'라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그러한 환경으로 후배 음악가의 창조력이 마구 발산되는 바람에, 드뷔시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음악가는 많지만 정작 인상주의 음악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정도를 빼면 이후에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이 명맥이 끊어져버린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그나마 라벨 조차도 완전 인상주의 음악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드뷔시는 1차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8년 3월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는데, 딱 드뷔시가 사라질 무렵에 유럽의 화려한 시대는 막을 내렸고, 드뷔시 이후 음악가들은 일부는 어디까지가 음악인가 한계를 실험하고 일부는 반대로 고전주의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자는 두 부류로 나눠지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이제 본격적인 현대 클래식 음악이 등장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드뷔시 피아노 곡 추천


아래 약 6시간 30분짜리 영상은 드뷔시 피아노 곡 전집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전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드뷔시 음악을 들어보고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영상이라고 생각되고, 

 

그 중에서 몇 가지 추천할만한 곡들을 연도 순으로 소개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곡과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곡들로 선정하였습니다.)

괄호 안의 시간은 위 영상에서의 곡 시작 시간입니다.

 

 

1. 두 개의 아라베스크(Deux Arabesques) 중 1번 (1890년)  (00:18:44)

 

드뷔시의 달빛 다음으로 유명한 곡이라고 생각되는 두 개의 아라베스크 중 1번 곡은 드뷔시 초기 곡 중 하나로 인상주의 초기 스타일로 달빛보다는 좀 더 고전적이고 평안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2. 베르가마스크 조곡(Suite Bergamasque) (1890년~1891년)  (00:00:00)

 

베르가마스크 조곡은 앞에서도 소개한 달빛(Clair de Lune)이 포함된 4개의 모음곡입니다.

1번은 프렐류드(Prélude), 2번은 미뉴에트(Menuet), 3번은 달빛(Clair de Lune), 4번은 파스피에(Passepied)로 4곡 모두 서로 다른 스타일이지만 모든 곡이 잘 알려진 편이라 모음곡 통채로 추천 리스트로 선정해보았습니다.

 

달빛이 단연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파스피에도 그에 버금가게 유명한 편이고, 프렐류드는 고전적인 스타일, 미뉴에트는 춤곡다운 발랄함, 달빛은 몽환적임, 파스피에는 빠르고 현대적인 멜로디가 특징입니다.

 

 

3. 영상 1권(Image 1) 중 1번, 물의 반영(Reflets dans l'eau) (1901년~1905년)  (01:19:34) 

 

1900년대로 넘어와, '영상' 부터 인상주의 특유의 스타일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앞서 소개한 Nahre Sol에서 소개한 드뷔시 스타일이 이 곡에 전부다 녹아 들어가 있다고 봐도 될 만큼,

드뷔시와 인상주의 스타일이 총집합된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뷔시와 그의 후배격인 라벨도 그렇고 물과 관련된 곡들을 만들었는데, 물의 투명함과 고요함, 그리고 외부 환경에 의해 일렁이는 변화무쌍함을 피아노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라벨의 물의 유희(Jeux d'eau)도 물의 반영과 비교해서 함께 들어볼 만 합니다.

 

 

4. 판화(Estampes) 중 1번, 탑(Pagodes) (1903년)  (01:05:59)

 

판화는 총 3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인데, 그 중 1번과 2번은 각각 동양(동남아)과 스페인을 모티브로 한 이국적인 스타일의 곡입니다. 탑(Pagodes)이라는 제목은 '파고다'라고 되어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동양 전통식 탑을 뜻하는데, 드뷔시가 파리 박람회에서 인도네시아 자바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아 작곡한 곡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동양음악 특유의 5음계(펜타토닉 스케일)로 멜로디가 진행되어 동양적인 느낌을 주고 동남아 타악기인 공(Gong)과 같은 이국적인 악기를 피아노로 묘사하는 부분들이 특색있습니다.

 

 

5. 기쁨의 섬(L'isle Joyeuse) (1903년~1904년)  (02:29:52)

 

드뷔시 곡 중에 아마 가장 밝고 쾌활한 곡이라고 생각되는 기쁨의 섬은 곡 내내 셋잇단음표로 진행되어 가벼운 리듬감과 온음음계(whole tone scale)과 리디안 모드(Lydian Mode)가 사용되어 기존 클래식 음악과 멜로디가 확연히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6. 아이들 차지(Children's Corner) 중 6번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Golliwogg's Cakewalk)  (1906년~1908년)  (02:11:36)

 

유일하게 영어 제목인 아이들 차지는 1905년에 태어난 그의 딸을 위해 작곡한 6개의 모음곡입니다. 아이를 위해 만든 곡이라는 특징답게 듣기 편하고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골리워그는 당시 서양에서 유행한 인형 캐릭터로,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 유행한 대중음악인 래그타임(Ragtime) 스타일이 차용되어 약간 장난스럽고 리듬이 흥겹습니다.

 

 

7. 프렐류드 1권(Préludes 1) 중 10번 물에 잠긴 성당(La Cathédrale Engloutie)  (1909년~1910년)  (03:03:22)

 

총 12곡으로 이루어진 프렐류드 1권 중 물에 잠긴 성당은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이스 섬 연안의 물 속에 잠긴 대성당이 맑은 아침에 바다에서 솟아난다는 고대 브르타뉴 신화에 기반한 곡입니다. 초반에는 병렬 5도 코드로 가라앉아있는 종교적인 느낌을 주고, 물에 잠겨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듯한 모호한 음색으로 진행되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순간 쨍하고 밝아지는 멜로디가 특징입니다.

 

 

8. 12개 에튀드(Douze Études) 중 1번, 다섯 손가락을 위하여(Pour les cinq doigts)  (1915년)  (05:08:19)

 

드뷔시 말년에 만들어진 에튀드는 쇼팽 에튀드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에 비하면 연주용 대중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드뷔시 연습곡은 낭만주의 시대에 작곡된 연습곡과 확연히 다르게 연습곡 마저 인상주의 스타일로 쓰여져서, 특히 치기 빡센 것에 비해 듣기에는 편안하게 들립니다. 

 

그 중에서도 1번은 맨 처음에는 피아노 처음 배우는 사람이 치는 '도레미파솔파미레도' 를 아무 꾸밈없이 치다가 치기 싫다는 듯이 중간 중간에 막 아무렇게나 두들기는 듯한 부분이 있어서 꼭 장난으로 피아노 치는 것 같이 들리는데요. 그러다가 슬금슬금 빌드업 하면서 본 실력을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엄청 화려하게 마무리하여서 피아니스트가 처음에는 피아노 못치는 척 연기하는 몰래카메라 같은 느낌을 들려주는 특이한 곡이라 개인적으로 재밌는 곡이여서 선정했습니다.

 

 

9. 석탄의 열기로 빛나는 밤(Les Soirs Illuminés par l'ardeur du Charbon)  (1917년)  (06:25:21)

 

드뷔시가 사망하기 1년 전에 쓰여진 가장 마지막 피아노곡인 이 곡은, 그가 살아있던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다가, 80여 년이 지나 2001년에 뒤늦게 발견된 곡이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약 2분 정도로 짧은 곡은 별다른 기교없이 밝은 지 어두운 지 애매한 멜로디로 고요하고 느긋하게 진행되어 불운했던 드뷔시의 말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 참고문헌 -

 

1. 피아노 문헌, 박유미 저, 음악춘추사, 2010

2. 20세기 피아노 음악, David Burge 저, 음악춘추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