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2 플레이 리뷰 - 불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형제의 모험기

2021. 5. 5. 01:45게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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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만드는 데서만 만드는 인터렉티브 무비식 어드벤처 장르계에서 2015년 홀연히 등장해서 수많은 팬덤을 양산했던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후속편,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2를 이제서야 플레이 했습니다.

 

처음 나온 지는 2018년 가을이고 에피소드 5까지 완결난 것도 2019년 연말인데, 한국어 지원이 안되서 한국어 패치만 목 빠지게 기다렸었는데요. 에피소드 3까지는 몇 달 텀으로 느리지만 나오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나머지 패치는 올라오지 않아서 알아보니, 한국어 패치를 만드는 '팀 프리스타일'이 해체해서 작업이 중단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제 더 기다리기가 싫어서 그냥 에피소드 4랑 5는 영어로 플레이 했는데, 편지같은 긴 글 읽기 귀찮은 것 빼고는 생각보다 할 만하더라구요. 디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갤러리 들어가보니 팀 프리스타일 멤버 중 한 분이 다시 팀 꾸려서 나머지 에피소드 한국어 번역을 준비한다는 글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제대로 진행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이제까지 기다린 게 아까우신 분은 몇 달만 기다려보고 판단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2 한국어 패치 링크 -

 

에피소드 1 & 2      에피소드 3

 

 

 

어쨌든 저도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1에서 호평받는 특유의 따뜻하고 몽환적인 그래픽, 미국 하이틴 드라마를 보는 듯한 풋풋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갈등 구조, 그리고 개성있고 매력적인 주인공과 주변인물 묘사 덕분에 엔딩 보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고, 다른 많은 게이머들처럼 왜 후속작은 맥스와 클로이의 스토리를 이어나가지 않는가 불만이 많았었는데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2를 하고 나니 1과는 궤가 다르긴 하지만 또 여운이 금방 가시지가 않네요.

 

성별만 바뀌었지 나이대가 전작과 비슷한 고등학생이기도 하고, 처음 시작 부분이 1과 비슷하게 전형적인 미국 고등학생들 노는 분위기라 1과 비슷한 컨셉으로 가는가 싶었는데, 그것은 모두 페이크였고 고등학생인 형 션과 초등학생인 동생 다니엘이 미국을 떠나 멕시코로 가기 위한 여정을 그린 '로드 무비'* 형태의 스토리라, 전작과는 상당히 분위기가 다릅니다. 오히려 현실판 워킹 데드같이 평화가 찾아올 때 쯤이면 더 큰 위기가 닥쳐오고, 여러 선택지들을 통해 처절하고 위태위태한 형제의 약 9개월 간의 미국 횡단 여정 끝에 기다리는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로드무비(Road Movie) : 주인공이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르를 말합니다.

 

 

 

 

 

평범한 먼치킨 주인공, 션


 

 

2편의 주인공이자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인 션 디아즈(Sean Diaz)는 시애틀에 사는 16세 고등학생으로 아버지가 히스패닉, 어머니는 백인인 혼혈입니다만 히스패닉에 훨씬 가까운 생김새입니다. 멕시코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스페인어도 능통한 모습을 보여줘서, 다니엘과는 다르게 히스패닉의 정체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션은 초능력도 없고 그 밖에 학교 생활에 있어 크게 잘난 구석이 부각되지는 않는데, 잘 들여다보면 성격이나 학교생활, 특기들을 보면 딱히 빠지는 부분도 없구요.

그리고 주인공이 너무 잘나면 공감이 잘 안가는 경우도 있는데, 아직 고등학생이라 중간중간 약간씩 서툴거나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미도 있어서, 호감가는 주인공으로서 오히려 완벽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게임이라 따뜻하고 예의있는 사람으로 또는 버릇없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행동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외모 > 대놓고 잘생긴건 아니고 항상 거지꼴로 다니지만 단정한 호감상

2. 공부 > 노는 무리에 있는 듯 보이지만 의외로 성적은 3.5로 양호한 편

3. 특기 > 육상부에 속해 있어서 달리기도 좀 하는데(장거리인 듯), 그림도 잘 그림

4. 탈선 > 담배는 물론이고 심지어 대마까지 몰래 하지만, 정작 파티는 시끄러워서 별로라고 약간 빼는 모습

5. 대인관계 > 대체로 자유분방 하지만, 눈치와 예의는 있어서 어른들한테는 잘 인정받음

6. 이성관계 > 여사친이랑은 할 말 안할 말 다 하면서 잘 어울리지만, 정작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수줍은 편

7. 형제 관계 >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동생을 귀찮아 하면서도 같이 놀 때는 또 신나게 잘 어울림

 

 

 

 

<집 앞 마당에서 쿨하게 친구랑 맞담배 하면서, 파티는 의외로 또 썩 안좋아함>

 

 

 

 

<동생 노크 안하고 자기 방 들어왔다고 개난리 피우면서, 어떨 때는 같이 신나게 침대에서 방방뛰어 제낌ㅋㅋ>

 

 

 

게임 초반에는 이른바 인싸 기질이 있는 평범한 미국 남자 학생처럼 나오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동생을 지키고 희생하는 성인군자급 행동들을 보면서 우리 게이머들에게 깊은 탄식과 안타까움을 갖게 합니다. 거기다 변화무쌍한 미국 땅에서 벌어지는 별의 별 일들로 인종차별, 부상, 사막 종주 등 온갖 고생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장면들을 보면서 아무리 가상 캐릭터지만 이렇게까지 불쌍하게 만들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그런 탓에 주조연들에게 비교적 고루 시선이 분산되었던 전작에 반해, 이번 작에서 션의 존재감과 비중은 압도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사람으로부터 위협 뿐만 아니라,

더위와 추위 등 문명인이 겪지 않을 근본적인 자연환경에서부터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극한 인생>

 

 

<어떨 때는 동생의 극단적인 행동을 막기 위해 본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되기도...>

 

 

 

게임 중간중간 여유가 있는 시간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밖에 1편의 맥스의 일기와 비슷하게, 2편에서도 션의 일기가 계속 업데이트 되는데, 세심하고 컬러풀하게 꾸며진 맥스의 일기와 달리, 션의 일기는 사실상 낙서장이라고 볼 수 있어서 글보다는 그림과 낙서의 비중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의 성격이나 처한 환경이 다르다 보니, 맥스의 일기는 일반적인 일기처럼 하루 하루의 생각이 잘 정돈되어서 적혀있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반면, 션의 일기는 막 휘갈겨져 있어서 글이 아니라 그림체로 심경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나 글이 비교적 단정하게 적혀있으면 마음이 평온한 상태이고,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은 욕과 막 휘갈긴 낙서로 뒤덮혀 있습니다.)

 

<션의 그림 그리기 타임~~>

 

 

<너무나도 대조적인 소녀감성 맥스의 일기(위)와 거친 션의 일기 겸 낙서장(아래)>

 

 

마지막으로 션의 인벤토리에는 배낭에 소지한 각종 물건들을 볼 수 있고, 각 물건들을 클릭하면 션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애틀 집에서부터 계속 떠돌아 다니다보니 처음에 가지고 있던 학생증, 아빠사진, 집 열쇠 같은 물건들을 계속 가지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생각이 계속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체념하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미련을 보여줍니다.

 

 

<종종 받게되는 편지도 버리지 않고 게임 끝날 때 까지 몇 달이 지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말 지지리 안 듣는 장난꾸러기 동생 다니엘


 

다니엘 디아즈(Daniel Diaz)는 션과 7살 터울의 나이차이가 좀 나는 동생입니다.

장난치고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남자 아이 특성을 갖고 있는데, 하필 이런 어린 아이가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초능력을 갖는 바람에 형제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습니다. 게임의 발단부터 해서 중간중간 션이 고생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여러 번 제공하는 민폐캐 속성이 강해서, 생긴 건 귀여운 꼬꼬마지만 게이머 입장에서는 속터지게 만드는 악명높은 캐릭이기도 합니다.

 

다니엘의 초능력은 사물이나 사람을 원거리에서 움직이게 하거나 날려버릴 수 있는 염동력(Telekinesis)으로, 맥스의 초능력인 시간 되돌리기에 비해서는 파괴적이고 나쁘게 사용될 소지가 큰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능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거나 또는 별 생각없이 장난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서 션을 고생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솔방울이나 깡통같은 물건만 들어올렸는데...>

 

 

<힘이 제어가 안되면 건물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하고...>

 

 

 

<힘이 무르익은 엔딩 쯤에서는 총알도 튕겨내는 대환장쇼를 보여줍니다>

 

 

 

션과 비슷하게 다니엘도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신의 초능력을 자각하지 못한 초반에는 그저 철없고 칭얼대기 좋아하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인데, 능력을 자각하고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게된 중반 이후로는 션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려고 하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난관을 헤쳐가고자 하는 경향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행동 변화는 특히 션이 그 동안 다니엘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게임 내 자주 등장하는 큰 선택과 작은 선택이 누적되어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니엘이 할머니가 뒤돌아선 사이에 장난으로 잔을 들어올렸을 때,

가만 놔둘지 주의를 줄 지 선택에 따라 이후 다니엘이 초능력을 막 쓸지 신중하게 쓸 지 달라지게 됩니다.>

 

 

 

한층 깊어진 형제관계 선택지의 영향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2의 핵심 시스템은 션의 선택으로 인해 다니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숨겨진 두 가지 파라미터, 도덕성과 신뢰도가 있습니다. 다니엘이 초능력이나 여러 행동들에서 무분별한 행동에 주의를 주거나, 또는 션 본인이 모범적인 행동을 하면 다니엘의 도덕성이 올라갑니다. 반대로 다니엘이 나쁘게 행동하는 것을 격려하거나 방치하고, 션 본인이 살기 위해 남의 물건을 훔치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면 도덕성이 낮아집니다. 도덕성이 낮아지면 다니엘이 형제의 안위를 위해서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다치게 하는 행동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지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다니엘은 남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기 때문에 수시로 주의를 주지 않으면 도덕성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다니엘이 초능력을 쓰도록 부추기게 유도하는 상황이 많아서 플레이어를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신뢰도는 도덕성과는 별개로 션이 다니엘의 의견을 얼마나 잘 수용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지에 따라 신뢰도가 높아지거나 하락합니다.
신뢰도가 높은 상태일 때는 션의 지시를 믿고 따르지만 신뢰도가 낮으면 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성격이 한 층 더 깊어지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따라서 다니엘을 도덕성 높게 만드려면 형제에게 위험한 순간이 다가와도 최대한 참고 넘어가도록 지도해야 하고, 또 다니엘이 그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 그 전에 평소에 다니엘을 잘 챙겨줘야 합니다. 이러한 시스템 특징 때문에 한 선택의 순간에서 똑같은 선택지를 골랐어도 그 전에 어떻게 했었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다니엘의 말이나 행동 변화는 엔딩과 같이 큰 결정 뿐만 아니라, 무심코 선택한 형의 말이 나중에 다른 반응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서, 2회차 플레이 때 1회차와 다른 선택을 해보면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자신을 신경쓰지 않는 션이 못마땅한 다니엘을 챙겨줄지,

혼자 텐트로 보낼 지 등의 선택은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을 위해 선물을 해주면 형을 더 잘 따르게 됩니다.>

 

 

 

<아직 철이 없는 다니엘은 아무것도 모르고, 또는 형의 행동을 따라서

욕하거나 도둑질 하거나 사람이나 동물을 해칠 수 있습니다.>

 

 

 

 

 

짧게 스쳐 지나가서 아쉬운 주변인물들


 

1편과 2편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션, 다니엘과 주변인물들 과의 관계성입니다.

 

1편은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같은 반 친구들, 선생님, 친구 부모 등 주변인물들이 모두 가까운 사이이고 배경 또한 학교와 동네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계속 같은 인물들과 만나고 부딪치고 하면서 주변인물들에 대한 성격이 상당히 입체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절친 워렌, 왕싸가지 네이선, 왕재수 빅토리아, 불쌍한 케이트, 지적이고 온화한 선생님 마크, 비호감 아저씨 데이비드 등에 대해서 선택지나 증거물들을 통해 그들의 다른 면들을 알아갈 수 있었는데 이러한 인물묘사는 기존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웰메이드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이여서 많은 게이머들이 호평하고 주조연 캐릭터들에 대한 폭넓은 관심도를 통해 많은 팬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였습니다.

 

반면 2편은 션과 다니엘의 형제 관계의 신뢰도와 친밀도는 맥스와 클로이 간의 관계보다 훨씬 다양한 선택지를 통해 섬세하게 묘사된 반면, 두 형제 외 인물들은 대체로 에피소드 한 두 개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인물과의 관계가 전작에 비해 얕아진 것은 아쉬웠습니다.

 

 

<등장시기는 길지 않지만, 다니엘의 유일한 친구 역할로 나와서 눈에 띄는 조연, 크리스 에릭센>

 

 

<초반에 등장하는 조력자. 브로디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인 클레어와 스티븐>

 

 

 

션의 가족 외에 인상깊은 인물이 게임 시작 부분에 나오는 절친 라일라 박, 다니엘과 비슷하게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공상을 좋아해서 다니엘과 친구가 되는 크리스 에릭센,  뒤에 언급할 에피소드 3에 등장하는 나름 러브라인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캐시디 정도가 있습니다. 라일라 박은 한국계 여학생으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1과 비슷한 학창시절 분위기와 평범한 일상을 상기시켜주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등장시기가 짧고 작중에서는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하지만, 션이 떠난 이후 그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전화나 인터넷 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등 그냥 친구 이상의 케미가 있어서 에피소드가 완결나기 전까지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녀의 재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팬아트 중에는 션-라일라 박 커플 그림도 꽤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시애틀을 떠난 이후 라일라와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 몇 번 있습니다. 할 지 안 할 지는 플레이어 선택.>

 

 

 

 

히피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에피소드 3에서는 션과 다니엘이 캘리포니아의 깊은 삼림지대에서 방랑자(drifters)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무리와 생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복장이나 행동을 보면 21세기판 히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그냥 오늘만 사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지라 문화충격인 장면들이 좀 나옵니다.  (진짜 요즘에도 저런식으로 사는 히피들이 있는 지 미국에는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션과 다니엘은 여기서 한 달 넘게 살면서 자유롭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농장 일을 하면서 멕시코로 가기 위한 돈을 버는 모처럼 즐거운 생활을 하게됩니다. 더불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단정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션이 히피 스타일에 점차 물들게 됩니다.

 

그리고 젊은 남녀들이 가까이에서 어울러 지내다보니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이야기 나누는 등, 선택지에 따라 아직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순수한(?) 션이 어른들의 사랑의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션이 러브 플래그를 세울 수 있는 두 인물이 나타나는데요. 짧은 한 에피소드에 내용을 담다보니 서로 애정을 갖는 그 과정에 상당히 인스턴트하고 즉흥적입니다ㅎㅎㅎ

 

어떤 사람들은 제대로 감정 묘사도 없이 저렇게 뜬금포로 키스를 하냐고 억지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전통적인 러브 스토리는 서로 사랑할 만한 발단이 있고, 몇 가지 사건을 거쳐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연인이 된다 이런 뚜렷한 기승전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너무 대충이다, 억지스럽다라고 생각할 여지도 충분히 있겠습니다만...

 

우리나라랑 서양이랑 연애문화가 다른 점도 있고, 특히 게임 속 히피들의 모습을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거창한 스토리나 확인과정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본능대로, 마음이 이끄는대로 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데는 딱히 서사구조가 필요가 없는 것이겠죠. 전형적인 청춘 드라마스러운 러브라인을 따라가는 모범생 같은 존재인 션이 히피들과 섞여 살면서 개방적인 성 문화에 눈을 뜨는 모습이 시각적으로는 별 대단한 애정씬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꽤 인상깊은 장면이였습니다.

 

 

<러브라인 후보 캐시디(왼쪽)와 핀(오른쪽)>

 

 

 

 

 

아름답고 다채로운 미국 풍경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2는 장소적으로는 미국 북서부 끝에 있는 시애틀부터 오리건과 캘리포니아의 숲과 계곡를 지나 네바다 사막, 그리고 미국 남부 멕시코와 국경지대인 애리조나까지, 시간상으로는 그리고 스산한 늦가을 부터 눈쌓인 겨울을 지나 뜨거운 여름까지 긴 시간과 넓은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미국의 광활하고 다채로운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전작 특유의 손으로 그린 듯한 그림체는 유지하면서 그래픽이 전반으로 많이 향상되어서 훨씬 깔끔하고 멋진 풍경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션과 다니엘이 다니는 곳이 대도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시골과 외딴 자연지역이 대부분이라 자연 속에 머문 듯한 잔잔한 배경음악도 위험천만한 그들의 여정 사이사이 평화로운 시기의 아늑함과 고요함을 느끼기 좋게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늦가을, 워싱턴 주 국립공원의 삼림>

 

<오리건 주 비버 크릭 마을의 겨울>

 

 

<네바다 사막>

 

 

<애리조나 협곡>

 

 

 

개연성 보다는 제작진이 보여주고 싶은 이상한 삶(strange life)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


 

결국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2의 주된 플롯은 홀로 두 아들을 키우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 바람에 션과 다니엘 형제이 시애틀을 떠나 아버지의 고향인 멕시코의 한 어촌 '푸에르토 로보스'로 떠나는 여정인데요.

 

하지만 돈도 없는 고등학생, 초등학생 형제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비록 아버지의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것도 위험하기로 소문난 멕시코로 이주하겠다는 계획이 현실적으로 말이 되느냐라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은 게임하는 내내 자리잡습니다. 그것도 주인공 형제가 숱한 고난을 겪는 것을 보면 그냥 이제라도 다시 시애틀로 돌아가는 게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미국은 땅덩어리가 작고 거의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와는 환경이 많이 다르다보니 미국의 문화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저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이런 개연성에 대한 의문에 부딪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멕시코로 가는 여정도 철저하게 계획해서 이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즉흥적이고 순간순간 상황에 대응해야만하는 상황에 놓이는 범죄자의 도피생활과 같은 아슬아슬함이 계속 이어집니다.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무모하고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행동들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직 정신적으로 다 성숙하지 않은 고등학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선택을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도 받습니다.

 

요즘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출 청소년 문제 같은 것들이 뉴스에 종종 나오곤 했습니다. 가출했다 경찰에 빨리 발견되어서 귀가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유흥업소라든가 조직폭력배 같은 사회 음지로 빠지는 케이스도 있었고, 심지어는 본드, 약물에 손을 대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청소년은 아직 어른들의 지도와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것도 그렇게 말이 안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게임의 어느정도 픽션성을 감안하고 나서는 시애틀에서 멕시코까지 간다는 것에 비로소 공감은 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편은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우연적인 사건과 장면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많은 사건들을 다양한 복선이나 논리적 전개가 아닌 우연성에 의존하는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좋지 못한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은데, 본편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지적에 대해 저도 공감하고 저도 플레이하면서 똑같은 이야기라도 좀 더 그럴듯하게 설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반면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라는 게임 제목 자체가 '인생은 기구하다'라는 주제를 담고 있기도 하고, 1편도 그렇고 이번 2편도 그렇고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모든 일들이 말이 되고 그럴 듯 해야할 것 같지만, 결국에는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능력을 얻고 가까운 사람의 우발적인 사고로 인한 죽음이라는 흔치 않은 사건을 겪으면서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자의 반 타의 반 결코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측면에서 2편은 평범하지 못한 인생으로 들어섰을 때 사람이 상황을 호전시켜보기 위해 몸부림치더라도 외부 요인에 의해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멕시코로 가겠다는 목표가 좌절되는지 아니면 성공하는 지를 더 극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내내 주목도 못받다가 갑자기 인생역전하는 브레이브 걸스도 있고, 잘 나가다가 뭐 하나 잘못 걸리면 한없이 추락하는 연예인이나 유튜버 같은 사람들 보면, 우연적인 일로 인생이 뒤바뀌는 것은 요즘에도 흔히 보이는 우리네 인생인 듯 하네요.)

 

 

 

 

형제의 운명은 어디로


 

엔딩은 총 4가지로 1편의 2가지에 비해 더 다양해지고 모든 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도 좀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최후의 선택만이 엔딩을 좌우했던 1편보다는, 엔딩을 위한 선택의 중요성이 대폭 상승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멀티엔딩 게임은 이래야 하는 게 맞지요~) 

 

4개의 엔딩 끝에는 각각 수 년이 지난 후의 모습이 엔딩 영상으로 나옵니다. 션의 나이만큼 자란 다니엘과 앳된 모습이 사라지고 완전히 어른이 된 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굿 엔딩이 나오면 내가 형제의 미래를 만들어갔다는 플레이한 보람을 느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책임감과 좌절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떤 엔딩이 최선이였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 듯 합니다.

엔딩 중 하나가 결국엔 목표를 달성하는 두 형제가 성공적으로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이주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그리고 이 최선으로 보이는 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이 일반적인 게이머의 상식과 약간 다른 면이 있어서, 게임 내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던 게이머가 이 엔딩을 못보고 전혀 엉뚱한 결말을 보게되서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네 가지 엔딩 모두 흥미롭게 잘 만들어져 있는 덕분에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과정을 몇 개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여주고,

시간이 지난 후의 션과 다니엘의 모습을 엔딩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후속작, 트루 컬러(True Color) 발매 소식


 

 

올해 3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후속작,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트루 컬러(True Color)에 대한 발매 소식이 최초 공개되었습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1 이후에 프리퀄인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비포 더 스톰(Life is Strange : Before the storm)이 나온 적이 있어서, 2 이후에 비슷하게 션과 다니엘의 시애틀 생활이 그려지는 프리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프리퀄을 건너뛰고 바로 다른 주인공, 다른 배경의 신작이 나오게 되었네요.

 

 

9월 발매 예정인데, 이전 작들처럼 에피소드별로 쪼개서 발매가 될지 어떨 지는 모르겠습니다. 시리즈 전통 답게 트루 컬러의 주인공은 사람의 감정을 감지하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인간관계나 심리에 관해 심도있게 다룰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트루컬러의 주인공은 21세 아시안계 미국인인 알렉스 첸(Alex Chen)으로, 1, 2편 주인공이 고등학생이였던 것과 다르게 성인인 것이 큰 차이점이고, 1편 여자 - 2편 남자 주인공에서 이번에는 다시 여자 주인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 2편의 지역 배경은 둘 다 미국 북서부 해안가 지역이였으나, 트루 컬러의 배경은 미국 중서부의 콜로라도 주의 헤이븐 스프링스(Haven Springs)로 지역적인 분위기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특유의 감성과 흥미로운 스토리를 후속편에서도 즐길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