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 선교사 기념관 - 서울의 근대 기독교 역사현장

2019. 2. 2. 20:07우리나라 - 관광지 명소/서울(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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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북로로 당산철교와 양화대교쪽을 지나다보면 한 편에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같은 곳이 있는 것을 자주 봐왔는데,

서울에 살지만 저 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이 곳을 찾아가보게 되었습니다.

이 곳은 당산철교를 사이로 왼편과 오른편에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사적지가 있는데요,


합정역 7번출구에서 내리면 아래와 같은 작은 광장에 안내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 바로 그 곳이였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조선말기부터 국내외 기독교 선교사 및 선교자 가족의 묘소가 있는 곳이고,

절두산 순교성지는 역시 마찬가지로 조선말기 때부터 진행된 기독교 박해로 인해 기독교인들 순교했던 곳입니다.


고층빌딩이 많은 합정역에서 불과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어 교통이 괜찮은 곳이지만,

주택가를 뚫고 나가야만 접근할 수 있는 묘하게 외진 위치때문에 천주교 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곳인데요,



기독교 사적지이긴 하지만 국사시간이나 한국사 시험 공부할 때

근현대사에서 들어봤을 법한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여서 생각보다 더 좋았습니다.


두 곳이 거의 붙어있고 모두 기독교 관련 사적지라 같은 곳이라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개신교에서 관리하고, 절두산 순교성지는 천주교에서 관리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개신교나 천주교인은 아니지만 약간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는데,

전자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반면, 후자는 미사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념상이 있는 등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저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찾아갔고,

그 다음 당산철교 건너편에 있는 절두산 순교성지를 찾아갔습니다.



- 절두산 순교성지 방문기 링크 -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곳에서 바로 오른쪽 골목으로 계속 가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오른편에 선교사 묘원 입구가 보입니다.


가운데에 높게 솟은 건물은 양화진홀이고, 오른편에 있는 건물은 선교기념관인데 둘다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다만 선교기념관은 휴무인지 제가 갔을 때는 닫혀있었네요.(금요일 오후)




선교사묘원은 앞쪽은 기념관 그리고 뒤쪽으로 묘소가 있습니다.




양화진 홀 입구는 이렇게 굳게 닫혀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왼쪽 입구앞에 서면 자동으로 열립니다.


입구 생김새 때문에 약간 비밀스러워 보이는 느낌도 있네요.




어두운 공간에 파도를 통과하며 진입하는 전시관 분위기가 사뭇 엄숙합니다.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이드 투어를 듣고 있었습니다.


미리 예약을 하면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어찌어찌해서 저도 같이 가이드 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천천히 전시물을 감상하게 되었네요.




양화진 홀은 윌리엄 홀과 로제타 홀 부부의 가족 이야기와 한글 성경에 대해서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부 둘 다 의사로 40여년 간 조선에서 사람들을 돌봤던 그들의 일대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조선에서 세 자녀를 키우면서 쓴 일기와 자녀 교육용으로 작성한 필기들 원본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남기기 위해 생일때 마다 손바닥 윤곽을 따라 그리거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 붙여놓는 등


자식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가지고 다닌 가방과 청진기, 그리고 본인이 직접 저술한 책들




그리고 이 부부는 특히 결핵환자들을 많이 치료했다고 합니다.


결핵이 예나 지금이나 전염성이 강해서 결핵환자들은 좋은 대접을 못받았는데,

이렇게 결핵환자를 돕는 기금을 마련하고자 우리나라에 최초로 크리스마스씰을 발행한 것이

바로 이 셔우드 홀, 로제타 홀 부부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되면 선생님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사라고 했었는데,

거기 보면 결핵환자 어쩌구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하필 결핵이지 했는데 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는 것을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다음으로는 한글 성경 전시물 및 한글 성경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영상이 있었습니다.





구한말, 일제시대, 해방 후 발간된 성경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상에서는 한글 성경을 만드는 데 공헌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구쪽에는 양화대교 북단에 있던 양화진과 선교사 활동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켠에 샘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은 특이한 조형물은 용도가 아리송했는데,

 

그리고 성경의 구절로 보이는 문구들이 위에서 비춰져서 손 안에 담을 수 있게 되어서 신기했습니다.










웅장한 모습은 기념관은 아쉽게 닫혀있어서 안에는 못들어가고 외관만 구경했습니다.




기념관 옆으로 묘원이 있습니다. 중앙의 낮은 언덕에는 유명하거나 업적이 있는 선교사들 중심으로 묘소가 있고,

언덕 아래 주변으로 수백명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양화진홀에 설명되었던 셔우드홀과 로제타홀의 묘소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 세 자녀들 중 어려서 하늘나라로 간 막내를 제외하고 첫째와 둘째 분은 90세 넘어 1990년대까지 살아계셨더라구요.




언덕 아래 묘소들




이 쪽은 어려서 하늘나라로 간 선교사 가족들이 있습니다.






  

묘소를 지나 반대쪽 넓은 곳으로 가면 당산철교가 보이고 반대편 절두산 순교성지로 갈 수 있습니다.